· 2015 등재예정
· 하동의 야산에 자생하는 야생차로 만든 하동 특유의 홍차를 부르는 이름

 

품목명
하동 잭살차

 

품목에 대한 설명
잭살차는 하동의 야산에 자생하는 야생차로 만든 하동 특유의 홍차를 부르는 이름이다. 작설의 명칭이 역사적으로 처음 쓰여진 기록은 중국 당대의 시인 유우석(772~842)의 시에 등장한다.

‘화로에 물을 부어 작설차를 달이고 물을 걸러 용수염을 깨끗하게 한다.‘ ≪ 전당시≫ 권357 오대십국 시대(907~979)에 쓰여진 모문석의 ≪다보≫에도 ‘횡원 작설 조취 맥과는 그 어린 잎을 취하여 만드는데 그 싹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라고 쓰여져 있다. 작설은 차나무 생엽의 형태를 일컫는 말이. 떡차에서 잎차로 변화되는 제다법의 변천 과정에서도 작설이란 명칭이 전승되고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잭살’은 ‘작설’을 부르는 하동지역의 방언이다. 작설(雀舌)은 찻잎의 여리고 고운 모양을 참새의 혀에 비유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의 시에 처음 나온다. 하동 지역 사람들은 ‘ㅏ’를 ‘ㅐ’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데 ‘강’을 ‘갱’이라 부르듯이(강조개 / 갱조개) 작설을 잭살로 불렀다. 이에 따라 찻잎(작설)을 이용해서 서민들이 만들어 마시던 발효차를 할머니들이 흔히 “잭살차”, “잭살차”라고 부르는 것에 착안해서 하동의 <전통 발효 홍차>의 이름을 <잭살차>라고 쓰게 되었다.

잭살차는 ‘작설’을 원료로 만든 차(茶)이며 하동지역 민초들의 숨결이 배어있는 원초적인 차이다. 1980년대 차의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학술적 용어를 담고 있는 ‘녹차’라는 이름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전까지 ‘잭살’은 우리차의 얼굴이었다. 잭살은 발효차로서 만드는 방법이 언제, 누가,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모르지만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이어져 질박하고 정감 있는 마실거리로, 때로는 민가의 비상상비약을 대신하여 약용으로 이용되기도 한 전통 민속차이다.

화개지역 민요에서는 이렇게 노래한다.

초엽따서 상전주고 중엽따서 부모주소
말엽따서 남편주고 늙은잎은 차약지어
봉지봉지 담아두고 우리아이 배아플때
차약먹고 병고치고 무럭무럭 자라나서

민요에서 알 수 있듯이 잭살차는 곱고 여린 ‘작설’이 아니다. 추운 날 딴 작설은 공납으로 바치고, 고단한 몸이 무르익은 봄볕에 녹을 무렵이면 찻잎도 거칠고 세어지는데 이때 따다 만든 차다. 만드는 방법은 찻잎을 햇볕에 시들리고 비비면서 발효와 동시에 말리거나, 부뚜막이나 온돌에 시들리고 비비고 띄워 발효를 시킨 후 말린다. 마실 때에는 뜨거운 물에 끓이거나 우려내어 마시는데 찻물의 색은 붉으며 때로는 똘배나 대추 등을 혼합해서 음용하기도 했으며 지금으로 치면 블랜딩 차의 주원료가 되기도 했다.

‘잭살차’는 고려 이후 약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우리차의 보통명사인 ‘작설차’의 하동지역 방언이자 동시에 제다법에 있어서도 차별되는 홍차형 발효차로서 전래 민속차이다. 즉, 홍차형 작설차로 이해 할 수 있다.

잭살차의 기본 제다 공정은 채엽 – 햇빛시들리기(일광위조) – 비비기(유념) – 상온발효(실외;햇빛) – 햇빛에 말리기(일쇄건조)의 순서로 진행된다. 위조과정을 통한 산화효소의 활성은 기존 작설차의 제다법에서 볼 수 없는 발효공정으로 구별짓게 만들며 홍차 제다의 고유방법을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실외에서 햇빛을 이용하여 위조(시들리기)에서 건조까지 진행되는 전과정과 낮은 습도에서의 발효는 여타의 홍차 제다법과 차별되는 잭살차 고유의 제다법이다. 잭살차의 모든 공정은 자연의 바람, 열(햇볕), 온도, 공기, 습도를 이용한 가장 친자연적이고 인위성이 배제된 독창적인 전래 민속차이다.

 

차의 형태에 있어서 작설차가 대부분 덩이차 모양인 반면에 잭살차는 잎차형(산차) 형식이다. 찻잎의 원료는 작설차가 여린 1창 1기의 잎을 이용하고 잭살차는 쇤 잎을 주로 이용하여 만든다. 쇤 잎을 원료로 이용한 연유는 하동지역이 역사적으로 차의 공납지역으로 추운날 갓 돋아난 여린잎(작설)은 공납으로 바치고 따뜻한 5,6월의 거친 잎을 민가의 음용, 약용으로 이용한 지혜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잭살차의 음용방법은 끓는 물에 직접 우려내어 마시거나, 돌배나 모과 등 다른 재료와 혼합하여 ‘탕’으로 끓여 마시는 방법을 이용 하였다. 잭살차의 탕색은 옅은 황금색이 가미된 밝은 선홍색이며 맛은 달콤하고 산뜻하며 마신후에는 시원하고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잭살차 제다법은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그 일단은 초의선사(1786~1865)의 ‘동다송’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화개동에는 옥부대가 있고 그 밑에는 칠불선원이 있는데 그곳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이 항상 찻잎을 늦게 따서 쇤 잎을 취하는데 땔감 말리듯 말려 시래기국 끓이듯 삶으니 몹시 탁하고 붉은 빛깔에 맛은 매우 쓰고 떫다.’

 

품목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작설차의 유래는 고려시대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작설차를 달여 마신 내용의 시속에 등장한다.

… 용천처럼 구멍을 뚫고
고인 물을 떠서 작설을 달이네
『陪先師丈室煮雪茶筵 ; 배선사장실자설다연』의 일부

고려시대 작설이라는 명칭이 전래된 이후 조선초 원천석(1330~?)의 ‘아우 이선차 사백이 보내준 차에 감사하며’, 김시습이 보낸 작설차를 받고 서거정이 쓴 ‘잠 상인이 작설차를 준 데에 대하여 사례하며’, 김시습의 ‘작설’ 등 문인들의 시에 언급되고 있다. 작설의 종류는 진각국사의 시 속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작설은 떡차(연고차, 덩이차)형태의 차를 달여서 음용 한데서 출발한다.

기본 제다법은 여린 찻잎(작설)을 채취하여 시루에 증기로 쪄낸 후에(살청) 절구질로 분쇄하고 틀에 넣고 눌러 덩이 형태로 만들어 낸다. 음다법은 덩이차를 가루내어 잔에 넣고 끓는 물을 부어 고루 저어서 마시는 점다법과 덩이차를 끓여 마시는 자다법의 방법을 이용하였다.

 

예로부터 하동차(茶)는 한국을 대표하는 차 산지였다. 그 기원은 『삼국사기』 「흥덕왕 편」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흥덕왕 3년(828), 12월 사신을 당에 보내어 조공하니 문종이 인덕전에 불러 선물을 주고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대렴(大廉)이 차 종자를 가져오자, 왕은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선덕여왕(재위 632~646)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하였다.’

지리산 일대의 하동 화개 지역은 화강암 마사토와 자갈이 많은 사력질 토양으로, 배수가 좋으며 약산성 토양(ph4.8)인 관계로 차나무의 생육에 적합한 최적의 토질을 갖고 있다. 또한 기후에 있어서도 연평균 14℃, 최고 32.7℃, 연평균 1,700㎜의 다우 지역이며, 섬진강과 화개천이 인접해 있어 안개가 많고 밤낮의 기온차가 커서 고품질의 차를 생산하기에 최고의 환경을 갖고 있다.

 

조선 후기의 다승인 초의 의순은 『동다송(東茶頌)』에서 지리산 화개동에는 차나무가 4-50리에 걸쳐 자라고 있다고 전하면서 예찬하고 있다. ‘『다경(茶經)』에 이르기를, 난석 중에서 난 것이 으뜸이요, 역양토에서 난 것이 다음이라 하였다. 그리고 『만보전서』에 의하면, 골자기의 것이 으뜸이라 한다.

화개동의 차밭은 모두 골짜기와 난석을 갖추었다.’ 120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온 하동의 차는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생산과 문화, 품질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며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최치원(857~ ?)이 왕명을 받아 쓴 하동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의 비문의 기록에는 “나는 이것이 무슨 맛인지 알지 못하겠다. 배를 적실 뿐이다” 라고 하였다. 신라의 하대에는 당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로 당나라의 차 또한 신라에 들어오고 있었다. 쌍계사의 전신인 ‘옥천사’를 창건한 진감국사 혜소(774~850)가 차를 끓여 마셨음을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이미 이 시대에 하동지역에 사찰을 중심으로 차문화가 형성되어 음다 풍습이 성행하였다.

고려의 이규보(1168~141)는 “화개에서 차 따던 일 논하면 , 관에서 독려함에 장정과 노약자 구별 없었네. 험준한 산중에 간신히 따 모아 멀고 먼 서울로 등짐져 날랐네. 이는 백성의 고혈과 살점이니…” 라고 언급 했는데, 이는 화개지역이 당시에 대표적 차 산지며 조정에 공납된 것으로 보아 차의 품질에서도 뛰어났음을 말해 준다.

조선 초기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한 하연(1376~1453)은 판서 민의생이 중국으로 사행을 떠날 때 화개차로 전별하면서 “향기로운 차는 금옥 같이 귀중하니, 마음 깊이 감사하며 전별한다오, 듣자니 화개곡은 맑기가 양이산과 같다고 하오” 하면서 화개차를 예찬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는 쌍계사의 만허 스님에게 차를 청하면서 “만허가 쌍계사 육조탑 아래 주거하는데 차를 만드는 솜씨가 절묘하였다. 그 차를 가지고 와서 맛보이는데 용정의 두강으로도 더할 수 없으니 …” 하고 전하는데, 화개의 차가 중국이 자랑하는 용정의 첫물차 보다 빼어나다고 평가 하였다. 역사적으로 화개차는 궁중에 공납되는 최고급의 차였으며 이면에는 차 공납의 폐해로 화개민의 고통 또한 심했다. 차문화가 쇠퇴하던 조선 후기에도 화개차는 초의, 추사를 비롯한 승려 문인들의 칭송을 받으며 우리 차문화와 생산의 중심에 있었다.

 

전통적인 생산 지역
경남 하동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경남 하동 화개면, 악양면

 

시장에서 판매 중 / 가정 소비용
시장 판매하고 있다.

 

품목(품종) 소멸위기의 이유
국내의 차시장은 외국의 저렴한 각종 차와 외국 블랜딩차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최근에는 전통차를 대신하여 대용차와 홍차 등이 호응을 얻으면서 전통차인 잭살차는 설 자리를 잃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차의 시배지인 고장에서 겨울이면 감기나 배앓이에 약으로 먹던 잭살차를 만들어 주시던 분들의 고령화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잭살차 만드는 생산자들이 경제적 이유로 문을 닫고 자연스럽게 야산의 차나무도 용도 전환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주소를 드래그 해서 Ctrl+C 를 눌러 복사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