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등재
· 폿감, 고래감, 베개감, 쇠불감, 종지감 등 다양한 종이 있으며 식용, 약용, 염색용으로 사용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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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명
제주 재래감

 

품목에 대한 설명
제주 재래감에는 폿감, 고래감, 베개감, 쇠불감, 종지감 등 다양한 종이 있다. 제주도 내에서 감을 분류하는 일반적 기준은 과실의 형태를 본 뜬 분류였다. 팥 모양을 담아 폿감, 맷돌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맷돌의 제주도 명칭인 고래를 넣은 고래감, 베게를 닮았다 하여 베개감, 쇠불알을 닮았다 하여 쇠불감, 작은 종지를 닮았다 하여 종지감 등으로 분류하는 속명이 있다.

이 중 베개감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나무의 형태는 1년생 가지 길이가 16cm, 1년생 가지 굵기는 4.9mm, 마디 수는 9.0 개이며 피목수(㎠당) 0.9 개이다. 꽃은 5월28일 경에 만개하며 암꽃과 수꽃이 있고 꽃모양은 방형이다. 잎 모양은 방추형이며 잎 길이는 13.4cm, 잎 폭은 9.0cm, 잎 면적은 93㎠이다.

과실은 10월 26일 정도에 익으며 완전 떫은 감으로 편방형이며 과피색(적색도)은 20.6이다. 과육색(황색도)은 48.3이며 당도는 23? Brix이다. 종자의 특성은 4~5립이며 길이는 17.1mm이며 폭은 13.7mm이다. 염색에 쓰이는 떫은 감은 7~8월경에 따서 절구에 으깨서 즙을 내어 10일 정도 발색한다.

 

모든 종류의 제주 재래 감에서 열매인 감의 맛은 달고 떫다. 떫은맛은 탄닌 성분에서 기인한다. 현재 제주도에만 있다. 번식은 재래 감 품종을 이용한 접목으로 번식하는 법과 씨앗으로 번식하는 법이 있다. 토양 때문인지 제주도에 자생하는 감나무를 육지부에 옮겨 심어도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감나무만큼 풀기가 있지 않고 탄닌 함량에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제주 재래 감에는 여러 변종들이 있으나 그 과실 모양을 빼고는 사용법 및 사용처 등에 큰 차이가 없어 구분지어 다룰 필요가 없다. 제주도 애월읍 하가리 방문조사에서는 서리 내린 후에 익은 감을 따서 먹으면 감기에 좋아 매년마다 약으로 먹고 있다고 하였다. 서귀포시 일원에서는 지금도 서리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관지에 좋다며 약으로 먹는다고 하였다.

떫은맛을 빼는 탈삽방법으로는 주로 가을에 과육이 딴딴하고 푸른 기미가 있을 때 따뜻한 물에 뜨지 않게 담가 놓고 매일 물을 갈아주며 3~4일 정도 나두었다. 이런 방식은 70년대까지도 가을 운동회 때면 집집마다 이렇게 하여 떫은맛을 뺀 감을 운동회 간식으로 내놓았다.

항아리에 정미하기 전인 보리 속에 푸른 기미가 있는 떫은 감을 1주일 정도 묻어 두었다가 탄닌을 뺀 후에 간식으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소주에 넣어서 울려 먹었다는 응답도 있었다. 이 방법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사료된다.

 

품목의 역사
조선시대 『남사록』에 제주 성안에 감이 많이 있으나 크기가 작고 씨앗이 많으며 맛이 없다는 기록이 있는데, 요즘 남아 있는 제주 재래 감도 크기가 작고 씨가 많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고광민은 『제주도 민구조사』에서 낚시줄을 풋감 즙으로 물들여 쓴다고 했다.

『탐라성주유사』에서는 오왕 8 년(1382년)에 명나라 태조는 전원의 제후국인 운남국을 평정하고 양왕의 태자와 그의 아들, 권속들을 탐라에 이주, 공양왕 4 년(1392년)에도 양왕의 자손과 그의 권속들을 이주시켰는데 이때 이들의 문화와 풍속이 전래되었으며 운남성에서 어망, 우산, 부채무명옷에 염색하여 입는 풍습이 전래 된 것 같다고 하였다.

운남성에 유시가 많았음을 고려 할 때 이때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제주도에서 감물로 염색한 옷을 입었다는 확실한 기록은 조선총독부에서 행한 제주의 생활상태조사(1929년)에서 처음 나오지만 한반도에서 1600년대 초에 이미 감물염색이 성행하였음을 출토복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학자인 윤봉조(1680~1761)의 시문집인 『포암집(圃巖集)』 도중잡영(島中雜詠)에 10번째 시 중에 “장맛비 올 때는 감으로 옷에 물들이고(凌雨?染衣)라는 대목으로 윤봉조가 제주도로 유배 와서 여기에서 본 것을 시로 읊은 것 중의 한 대목이다.

동아일보1965년 9월9일자에 실린 살림의 아이디어 “제주의 갈옷”에는 감물염색방법과 감물염색 옷의 장점이 소개되어 있다. 이렇듯 남녀노소의 일상복 및 노동복으로 정착되었던 갈옷이 1960년대까지 대표적인 민속복으로 전승되어져 왔음을 알 수 있고, 빳빳하게 염색한 갈옷은 현재 제주도에만 남아 있을 뿐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전통적인 생산 지역
제주도 안덕면 동광리 북동쪽에 위치한 측화산으로『 탐라지』에는 시목악(枾木岳)이 나오는데 이는 오름에 감나무가 많은데서 유래되었고,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柑山里)는 산이 감과 비슷하다고 해서 시산(枾山)이라고 하다가 후세에 이르러 감산이라 개칭되었고, 안덕면 광평리에는 감낭물이 있는데 이것은 연못에 야생감나무가 많아 붙여졌다고 한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도 감낭골이라 하여 감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있다. 과거에는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포읍 지역에서 주로 재배 되었다. 제주시 일원에도 일부 재배되었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지고 100년 이상 나무는 10~15 그루 정도로 하귀, 월평, 와흘 등지에서 관찰되었다.

현재 집집마다 노동복을 염색하기 위해 보존되어 있지 않다. 나무가 든든하지 않아 제주도의 특성 상 태풍에 나무가 잘 꺾여 고사하기도 하고 관리 소홀로 죽기도 하고 감 따기가 힘들어서 잘려지기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4237-2 번지에서 제주의 재래 감을 보존 재배하고 있다.

 

시장에서 판매 중 / 가정 소비용
전통시장인 오일장에서는 제주 재래 감이 아주 미미한 수준에서 팔린다. 그러나 이런 판매도 1990년대 말 제주도에 단감나무 재배가 시작되면서 단감 풋감으로 대체되고 경북 청도나 경산 등지에서 재배하는 떫은 감으로 만든 감물이 저가로 제주도에 공급되며 지속적으로 적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품목(품종) 소멸위기의 이유
제주재래감은 식용, 약용, 염색용으로 사용돼 왔다. 이 중 식용은 단감, 홍시 등 감만이 아니라 여타 값싼 과일이 시중에 넘쳐나 떫은맛을 빼서 먹는 노력을 하며까지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약용도 의료 서비스가 값싸게 보급되며 시골 지역에 있는 나이 드신 분들 몇몇이 겨우 사용하고 있는 정도이다.

제주 재래 감의 용처 중 가장 늦게까지 가장 많았던 염색용 수요도 1990년대 말부터 제주도에 단감이 도입되어 재배되면서 그 씨앗을 대신 이용하고, 최근 경북 청도에서 감물이 다량 제조되어 제주도에서도 저렴하게 시판되면서 점점 제주산 감물의 사용이 적어져 직접 감나무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런 수요 감소에다가 지역 난개발, 마을 재개발, 주택 개량 등으로 점점 감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1970년대 이후 서귀포 지역을 중심으로 한 감귤 산업화로 점점 감귤 단종 재배를 하게 되어 감귤 경작지 확보를 위해 집 주위의 감나무들도 잘려 나갔다. 이제는 이미 많이 사라져 중산간 마을에서나 오래된 감나무들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재래 자원 보존을 위한 정도만 겨우 가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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