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 등재예정
·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에서 잡히는 물고기
· 지방질이 많아 구수한 맛이 나며 그 맛이 진함

 

품목명
웅어

 

품목에 대한 설명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등 서남해안 큰강 하류의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에서 많이 잡히는 물고기이다. 맑은 물보다는 흐리지 않을 정도의 물에 살며, 낮에는 약간 얕은 곳에, 밤에는 깊은 곳에서 생활한다. 어린 웅어는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바다로 내려가서 성장하다가 5월쯤 바다와 맞닿은 하구로 올라온다.

산란기는 5∼7월이며, 이 시기에 서해안에서는 큰 강 하구역이나 강 하류를 올라가 산란한다. 갈대밭에 산란하고 그곳에 한동안 머무르다 바다로 내려가 죽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한자로는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葦魚)라고도 한다. 강경, 부여 등 충청도에서는 우여(또는 우어, 위여), 의주에서는 웅에, 해주에서는 차나리라고도 부른다. 《자산어보》에는 길고 가늘게 생긴 모양과 은백색의 빛깔이 칼과 비슷하다 하여 ‘도어(?魚’)라고 부르고 있다. 《본초강목》에는 제어, 열어, 멸도 등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물로 잡거나 어살을 설치해 잡기도 하였다. 요즘에는 새우잡이 그물에 걸려 올라온 것을 모으거나, 따로 바다와 강의 경계 수역에 그물을 놓아 잡는다.

 

몸은 길고 측편하며, 꼬리로 갈수록 점차 가늘어진다. 입은 크고 위턱은 길어 그 뒤끝부분이 눈보다도 훨씬 뒤쪽에 위치한다. 등지느러미는 작고 몸의 앞쪽에 위치하며, 배지느러미와 거의 같은 위치에서 시작한다. 뒷지느러미는 아주 길게 자리잡고 있으며, 꼬리지느러미와 연결되어 있다. 가슴지느러미는 윗부분의 6개 연조가 각각 떨어져 길게 뻗어 있다. 그 뒤끝 부분이 뒷지느러미가 시작되는 부분보다 훨씬 뒤쪽까지 미친다.

주둥이는 짧고, 그 앞쪽 끝은 둥글게 돌출한다. 몸에는 탈락하기 쉬운 둥근 비늘로 덮여 있으며, 배쪽 가장자리에는 모비늘이 46~55개가 있다. 서식장소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요각류를 주로 먹으며 그 외 새우류, 게류, 젓새우류 등 갑각류를 먹는다. 다른 멸치과 물고기처럼 잡혀서 오래 가지 못하고 바로 죽어버린다.

 

보리가 익어가는 늦봄에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주로 회로 먹는데 머리와 내장만 빼고 뼈째 모두 먹을 수 있다. 3월에서 5월 초까지가 제철. 이때의 웅어는 살이 연하고 부드러워 회를 치면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지방질이 많아 구수한 맛이 나며, 씹을수록 그 맛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씹히는 질감은 가볍고 부드러운데, 삼키고 나면 뒷맛이 투명하다.

미나리 같은 향기 나는 채소에 갖은 양념을 넣어 버무려 먹어도 좋다. 새콤달콤한 봄 냄새가 입 안 가득 전해온다. 5월 중순이 지나면 뼈가 단단해지고 가시가 뻣뻣해져 맛이 떨어진다. 회 외에도 말려서 구워 먹기도 하고 매운탕, 회덮밥을 해먹어도 맛이 뛰어나다. 웅어젓갈은 옛날 궁궐에서 필히 담가 먹었을 정도로 맛이 좋다.

 

품목의 역사
《한국수산지》,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양군지》 등에 조선시대 임금이 먹던 귀한 영양식으로 등장한다. 《경도잡지》에 사옹원이 나서서 늦은 봄이나 초여름에 웅어를 잡아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사옹원은 조선시대 궁중의 음식 관련 업무를 맡아보던 관청인데, 위어소(葦漁所)를 고양에 설치해 임금에게 진상할 웅어를 전담해서 잡을 정도였다고 한다.

백제의 의자왕도 보양식으로 웅어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의 소정방이 웅어를 맛보려고 부하들에게 잡아오라고 시켰으나 한 마리도 잡아오지 못하자 ‘고기마저 의리를 지키려고 모두 사라졌구나’라고 말한 데서 ‘의어(義魚)’라는 말이 나왔다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함경도와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 강가에서 웅어가 잡혔다는 기록이 있으나, 강가에 하굿둑이 보편화되면서 물길이 막혀 이제는 만날 수 있는 포구가 많지 않다. 김포와 고양, 파주의 한강 자락에서 많이 잡혔고, 멀리 올라오는 놈들은 행주나루나 개화산 앞강까지 왔다고 한다.

한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웅어철이 되면 그야말로 물 반 웅어 반일 정도로 웅어가 많이 올라왔다고 한다. 당시 행주나루 사람들은 웅어를 잡아 자식들의 등록금을 마련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정비사업을 하면서 갈대숲이 사라지고 어획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금강 역시 하구둑이 세워지면서 민물과 바닷물에 경계가 생겼고, 물길이 끊기니 회유성 물고기의 자취도 사라졌다. 부여군 양화면 갓개포구에서는 장항 등에서 웅어를 사다가 쓰는 실정이다.

성질이 급해 금방 죽는 웅어인지라 산지에서 대가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냉동시켜 이곳으로 올려보낸다. 지난 2004년부터 매년 4월 초에 ‘우여축제’를 개최하여 예전의 번성했던 포구를 기념하고 있다. 부산의 하단포구에서도 2006년부터 매년 5월초에 낙동강 하구에서 잡히는 웅어로 지역축제를 개최한다.

 

전통적인 생산 지역
경기도 고양, 김포, 강화의 한강을 비롯해 영산강, 금강, 낙동강 하구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알을 낳기 위해 4~5월에 민물로 올라와 갈대 숲에 알을 낳고 한동안 머무르는 회유성 어종인데, 요즘은 모두 둑이나 철책선에 가로막힌 탓에 강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대부분 바다와 강의 경계 수역에서 그물을 설치하여 잡는다.

웅어 맛을 보기 위해 많이 찾는 곳으로 강화도 외포리 나루터와 초지대교 인근의 횟집이 있다. 부여군 양화면 갓개포구와 부산의 하단포구에서 4, 5월에 지역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시장에서 판매 중 / 가정 소비용
매년 봄에 해안가 포구에서 생선으로 판매, 말리거나 냉동하여 저장 판매하고 있다.

 

품목(품종) 소멸위기의 이유
웅어는 봄철에 산란하기 위하여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회유성 어류인데 대부분 지역의 강에 둑을 만들거나 하천정비사업을 해서 갈대숲이 사라져서 산란처가 없어졌다. 그나마 바다와 강의 경계 수역에서 어업이 가능하지만 비싼 생선이 아니다 보니 잡아 봤자 이윤이 남지 않고 예전만큼의 물량이 잡히지 않아 경제성이 떨어져서 웅어잡이 어업이 쇠퇴했다.

17세기 겸재 정선의 한강 그림을 보면 웅어잡이 고깃배가 밤을 밝혔다고 할 정도로 웅어 어업이 성행했었고 한강 개발 전까지만 해도 자식 등록금 마련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어획량도 줄고 경제성이 없어서 새우잡이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잡어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어르신들이 봄철에 기억하고 찾고 있는 정도이고 젊은이들과 아이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생선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지난해 방송에 나간 이후에 웅어를 찾는 시민들이 늘어나 일부러 웅어 그물을 쳐서 잡고 특히 올해 어획량이 많기 때문에 지금 강화도로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앞으로 시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찾지 않음에 따라 어업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맛의방주에 등재하고 소비자가 찾도록 해서 웅어의 맛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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