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 등재
· 뼈,깃털,피부,발톱,부리,눈까지 몸 전체가 검음
· 임금님께 진상 된 닭
· 보신용, 약용으로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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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명
연산오계

 

품목에 대한 설명
오계는 닭의 한 품종으로 뼈가 까마귀처럼 검은 닭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연산 화악리의 오계는 뼈뿐만 아니라, 깃털, 피부, 발톱, 부리, 눈까지 몸 전체가 온통 검은 것이 특징으로, 흔히 비교되는 오골계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머리가 일반 닭에 비해 작고 볏은 왕관(crown) 모양으로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 암컷의 볏은 수컷보다 훨씬 작으나 모양은 수컷과 같다. 볏의 색깔이 계절과 기온에 따라 농도가 변하는 특징이 있다. 깃털은 청자색이 감도는 흑색이며, 가끔 흰색(白毛)이나 얼룩무늬(斑毛) 깃털을 입고 나오는 것도 있다.

일종의 돌연변이인 흰 오계는 평균 2천수당 1마리 꼴로 나오는데 검은 어미에게서 흰병아리가 나온다는 점이 흥미롭다. 흰 오계를 생산하지 못하는 오계는 순종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이다. 순종 오계를 고를 때 빼놓지 않고 확인해야 할 점이 발가락 수와 다리의 잔털 유무이다. 순종 오계의 발가락은 모두 4개이고 다리에 잔털이 없다. 정강이 뒷쪽에 뾰족하게 나와 있는 것은 발가락이 아니고 ‘며느리 발톱’이다. 실크 오골계나 혼혈 오골계는 발가락 수가 5개인 것이 많고 다리에 잔털이 있다.

연산오계는 가축으로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야생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일반 닭처럼 가두어 놓고 집단적으로 사육하면 스트레스를 받아 싸움을 하거나 쪼여 죽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나뭇가지 위로 쉽게 날아오르기도 하고, 사료를 먹기보다는 벌레를 잡아먹거나 풀을 뜯거나 모래를 주워 먹는 것을 좋아한다.

수탉은 매우 호전적인 성격이라 종종 다툼이 일어나 어느 한 쪽이 죽는 경우도 많다. 싸움상대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거나 마구 찍어대며 매일 제 피라도 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심지어 가끔 사람에게 대들어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닭은 고기나 달걀을 얻기 위하여 키웠다. 연산오계는 보신용, 약용으로도 많이 요리되었다. 연산오계와 잉어, 그리고 더덕과 수삼을 함께 넣어 달인 “용봉탕”은 조선시대에 임금님께 진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계에 황기와 더덕, 대추, 마른 고추, 마늘, 생강을 넣어 만든 “오계 황기탕”도 보신용으로 끓여 먹었다. 한국 대표의 의학서인 ‘동의보감’에 연산오계 수탉과 암탉의 쓰임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뼈와 털이 모두 검은 오계가 가장 좋다. 눈이 검은 새는 뼈도 반드시 검으니 이것이 진짜 오계’라며, 연산오계의 특징을 묘사하면서 몸을 보하는 효과가 큰 고기임을 강조했다.

또한 ‘오계가 중풍에 특별한 효과를 보인다’면서 중풍으로 말이 어눌한 것과 풍한 습비를 치료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국을 끓일 때, 고기와 함께 파, 천초, 생강, 소금, 기름, 간장을 넣고 푹 삶는다며 요리방법까지 일러주고 있다.

연산오계의 달걀은 품질면에서 양계장 산란닭과는 비교하기 힘들다. 삶으면 흰자위 두께가 0.5㎜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육질이 치밀하고 단단하다. 그 맛은 여느 달걀 흰자위와는 달리 쫄깃쫄깃하기까지 하다.

 

품목의 역사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 문인이자 학자인 제정 이달충의 문집 『제정집(霽亭集)』에 오계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당시 큰 권세를 누리던 승려 신돈이 나이 들어 오계(烏鷄)와 백마(白馬)를 먹고 정력을 보충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東醫寶鑑)』 「탕액편」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선조 이전에 사육한 것은 확실하며, 중병을 앓던 조선조 19대 임금 숙종이 연산오계를 드시고 건강을 회복한 이후로 충청지방의 특산품으로 해마다 오계가 진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약성이 좋다하여, 연계노해(連鷄魯蟹, 연산에서 나는 닭과 노성에서 나는 게)라는 사자성어가 생길 정도로 이름을 얻었다.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는 전주이씨 익안대군(태조의 셋째 아들)의 제14세손 이형흠(李亨欽)이 사육하여, 25대 철종임금께 진상했다는 기록(1800년대 중반)이 있으며, 거의 멸종되었던 것을 이형흠의 증손 이계순의 노력으로 일부 보존되어 현재까지 6대에 걸쳐 보존되어 오고 있다.
기르기가 까다롭고 잘 크지도 않아서 사람들이 장차 연산오계를 기르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여 천연기념물로 등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아들 대인 1980년이 되어서야 “연산 화악리의 오골계”라는 명칭으로 천연기념물에 등록되었다.

하지만, 연산오계는 일본의 천연기념물인 오골계와는 분명히 다른 품종이기에, 문화재청은 2008년 3월 26일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 회의를 열고 천연기념물 265호 연산 화악리 오계에 대한 명칭변경에 대한 심의를 벌여서 일제 강점기 때 오골계로 바뀌어 불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로 인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 28년만에 “연산오계” 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연산오계의 유일한 사육장인 지산농원에서는 2003년 이후로 매년 연산오계문화제를 열고 있다. 연산오계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테마로 “연산 오유공 위령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는데, 2006년부터 현재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동물 위령제는 우리 선조들이 사람을 위해 희생된 동물들의 넋을 위로하고 천도하기 위해 지내온 미풍양속인데,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그 형식을 재현하고 있다.

 

전통적인 생산 지역
연산오계는 지역에 대한 배타성이 강해 분양을 통한 사육기반 확대가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타 지역으로 나가면 점차 특성을 잃어간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로는 “계룡산 사방 30리를 벗어나면 연산오계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 씨는 “학계에선 연산오계가 다른 지방으로 나갈 경우 3대째(F2)부터 유전자형질에 가시적인 변화가 생긴다고 본다”고 말했다. 천연기념물에 등록될 당시인 1980년만 해도 인근 지역에는 20여 농가들이 집집마다 수십 마리 씩 연산오계를 키웠다고 한다.

그러나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연산오계 사육을 포기하는 지역 농민들이 늘어갔다. 급기야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현재 지산농원의 대표인 본인의 선친인 래진씨만이 홀로 지역에서 연산오계를 길러야 했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충남 논산시 지산농원에서만 사육되고 있다.

 

시장에서 판매 중 / 가정 소비용
1992년 늘어나는 연산오계의 소비를 위해 전문음식점을 개업하여 현재까지 경영해오고 있다. 직거래를 통하여 고기와 달걀 등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수익성이 떨어지는 탓에 팔면 팔수록 적자가날 정도이다.

 

품목(품종) 소멸위기의 이유
연산오계는 성질이 야생조류에 가까워 그만큼 기르기가 쉽지 않다. 좁은 면적에서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일반 닭처럼 기를 수가 없고, 여기에다 한두 달이면 다 자라는 개량종 닭과는 달리 적어도 6개월은 키워야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사료를 잘 먹지 않는 것 역시 사육의 어려움을 배가한다. 일반 육계농가들은 부지런하게 일하면 일 년에 6~7차례 큰 닭을 집단 사육해서 길러낼 수 있다. 그런데 연산오계는 많아 봐야 일년에 두 번 큰 닭을 출하할 수 있어, 생산성이 많이 떨어진다. 달걀 생산도 일반 산란닭에 비해 크게 뒤쳐진다.

연산오계 암탉이 부화할 수 있는 크기의 달걀을 생산하려면 8개월~12개월 자라야 한다. 일반 산란닭보다 길게는 두 배 이상 길러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일반 산란닭이 보통 하루에 1알을 낳는데 비하여, 연산오계 암탉은 일 년에 100개 정도밖에 알을 낳지 않는다.

게다가 사육 공간 역시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달걀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점 때문에 1980년대까지만 해도 화악리 일대에서 종종 보이던 연산오계의 사육농가는 점점 줄어들다가 급기야 한 곳만 남게 되었다.
한 곳에서만 키워지고 있다 보니 전염병에도 매우 취약하다. 이 때문에 질병이 돌 때면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 연산오계를 보호해왔고, 1970년대의 돌림병 때에는 닭들이 집단 폐사하는 바람에 8마리밖에는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에도 전염병이 있을 때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닭을 대피시켜야만 했다.

또한, 근친교배에 따라 열성인자가 만연하는 것 역시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인근에 새로운 농장을 조성해서 연산오계를 길러보기도 하였으나, 주변 주민들의 반발로 새 농장을 포기하고 다시 지산농원으로 오계 식구들을 불러 들여야 했다.

지산농장에서는 가업을 잇기 위하여 엄청난 적자에도 불구하고 농장을 유지해오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국가에서 지원금이 나오지만 턱없이 부족하여,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2001년 2만 마리까지 증식을 시켰던 오계를, 현재는 2,000마리~3,000마리 남짓한 수만 유지하고 있다. 이는 연산오계가 천연기념물 지정을 받았던 1980년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현재 대를 이어오계를 키울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어 더욱 안타까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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