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 등재
·토종밀로 껍질이 연해 발효가 잘되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며 아토피의 원인인 글루텐이 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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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명
앉은뱅이밀

 

품목에 대한 설명
앉은뱅이밀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토종밀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전통음식에 잘 맞는다. 대표적으로 “누룩”을 들 수 있다. 통밀을 빻고, 빻은 밀에 물을 20%정도 축여 반죽한 후, 틀에 넣어 적당한 온도에서 숙성시켜 만든다.

누룩은 공기 중에 떠도는 곰팡이를 받아들여, 곡물을 당화시키고 발효시키는 역할을 하며, 한국 전통 술인 ‘막걸리’의 주재료가 된다. 앉은뱅이밀은 껍질은 붉은 반면 속살은 다른 밀보다 희기 때문에 누룩을 했을 때 색깔이 아주 잘 나오고, 특유의 향이 좋아 맛을 배가 시킨다. 껍질이 연한 연질밀이기 때문에 작업이 용이하고, 발효가 훨씬 잘 된다.

또 전통방식의 고추장에는 반드시 밀이 들어가는데, 이때 앉은뱅이밀이 그 어떤 밀보다 고소한 맛이 난다.

경남 지역에서는 고추장의 양념장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고추장샘”에 앉은뱅이밀이 사용된다. 앉은뱅이밀을 볶아서 물에 끓여 밀차를 해서 애용하면 속이 편하고, 피부 진정효과가 있다고 한다.

 

앉은뱅이밀의 일반적인 특성
앉은뱅이밀은 개량종 보급밀에 비해 키가 작아 50~80cm 정도이다. 앉은뱅이밀은 키가 작아 콤바인 수확이 어렵고, 수확량이 적다는 평가가 있는데, 거름을 충분히 줄 경우 80cm이상 자라고, 포기 번식이 왕성하여 수확량도 많다.

오랜 시간동안 한반도 기후풍토에 내성을 키워 왔기 때문에 병충해에 강하다. 특히 가을철 습해 피해나 봄철 우기 피해에 가장 강한 특성을 갖고 있다. 보통 10월 25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흘 동안 심으며, 수확기가 경남의 경우 6월 10일 전후로 벼-밀 2모작이 가능하다.

다른 밀보다 5~10일 정도 수확이 빠른데, 이는 벼의 적기 이앙과 그로 인한 소출에 큰 영향을 준다. 앉은뱅이밀을 전북, 충청 지역에서 파종했을 때, 수확이 10일 이상 늦어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밀 열매의 특성
앉은뱅이밀은 알맹이의 크기가 작고, 붉은 황토색을 띄고 있다. 다른 밀은 크고 흰색이다. 앉은뱅이밀은 입으로 깨물어 보면 잘 으깨지는 연질밀로 맷돌식 제분에 용이하고, 96~97%까지 통째로 갈아내는 통밀가루의 질이 우수한 특징이 있다.

다른 밀은 빵의 요리 적성을 강화하기 위해 글루텐 함량을 높이는 쪽으로 육종되어 왔다. 그래서 앉은뱅이밀은 강력분 일반 밀에 비해 빵의 부피가 비교적 작다. 하지만, 소화불량이나 아토피의 원인이 되는 글루텐이 낮기 때문에 노약자나 어린이에게 적합하다.

앉은뱅이밀은 단맛이 많이 나고, 특유의 향이 좋아 밀가루 반죽에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고 자체의 맛이 중요한 수제비, 칼국수, 전에 인기가 좋다.

 

품목의 역사
밀사리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 보릿고개에 들에 밀이 익어가면 밀을 불에 태워 손으로 비벼 먹는 아이들의 풍습이 밀사리다. 최근에는 밀 재배 지역에서 지역축제로 밀사리축제를 개최하곤 한다. 앉은뱅이밀의 밀사리는 5월 하순이 적당하다.

 

전통적인 생산 지역
앉은뱅이밀은 경남 서남부 지역인 진주, 고성, 함안, 사천, 남해 등지에서 전통적으로 재배되어 왔으며 쌀과 이모작 하였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진주시 금곡면과 그 일대에서 주로 생산되고 있다. 금곡면은 진주시의 남부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고성군과 사천군이 인접해 있으며, 5일장이 서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앉은뱅이밀의 재배와 이를 수집, 제분하기에 용이하다.

 

시장에서 판매 중 / 가정 소비용
마켓이나 시장에 판매되는 양은 없고, 전량 전화,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 판매되고 있다. 진주 금곡에서는 영농조합을 만들어 앉은뱅이밀을 생산하고 있으며, 2012년 기준, 작목반 27명이 재배면적 30ha에서 120톤을 생산하였다.

현재 진주곡자에서 연간 60톤~80톤가량 누룩용으로 구입하고 있으며, 우리밀 베이커리 기업인 ‘나무오븐’이 앉은뱅이밀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경기 부천시 떡까페 ‘달나라토끼협동조합’이 앉은뱅이밀 직거래를 추진하고 있다.

 

품목(품종) 소멸위기의 이유
경남지역의 어른들은 계묘년(1963년)을 기억하고 있다. 그해에는 밀, 보리를 수확해야 하는 시절에 거의 두 달을 매일같이 비가 와 큰 흉년이 들었다고 한다.

그해 금곡정미소 백관실대표의 어머니는 “종자라도 남겨야 한다”는 시아버지의 명에 따라 비속에 밀 열매를 거둬와서 대청에 탈곡기를 차리고, 온돌방을 향에 타작을 해서 미지근한 불로 건조해서 앉은뱅이밀 종자 2말을 건졌다고 한다.

1984년 정부 밀수매가 없어졌다. 이때, 일선 행정에서는 밀수매만 없앤 것이 아니라, 정미소의 제분기도 없애도록 했다고 한다. 밀산업 기반을 없앰으로써 국내산 밀 재배와 소비의 토대를 없애려 했다고 한다. 대형 제분 공장은 모두 수입밀에 맞게 제분기를 운영하였다.

결국 앉은뱅이밀을 제분할 수 있는 곳은 금곡정미소 하나만 남아, 형제 친척이랑 나눠먹으려고 조금씩 농사짓는 농부들의 밀조차 받아줄 곳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국내의 밀 생산은 큰 타격을 입었고, 1970년대 초 15~20%였던 국내 밀 자급률이 1990년에는 0.05%까지 떨어졌다. 1991년 전국적으로 우리밀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었으나, 공장에서 가공이 용이한 품종인 개량종 “금강밀” 위주로만 재배가 되었고, 농협이나 지자체에서 실시한 밀 수매에서도 토종 앉은뱅이밀은 붉다는 이유로 외면받았다.

식생활이 서양화되면서 밀의 소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2011년 기준 밀의 자급률은 1.0%에 불과하다. 2011년 한 해 동안, 452만2000톤에 이르는 밀을 수입했고 국내에서 직접 생산한 밀은 4만4000톤에 그쳤다.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금곡정미소에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소형제분기 몇 대를 계속 유지 운영해옴으로써 소량으로 재배하는 앉은뱅이밀을 제분해 주었다.

이것이 입소문이 나면서 점차 소비가 늘었고, 앉은뱅이밀가루의 제품 질을 유지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채종포를 운영하고 있다. 채종한 종자를 인근 농가에 보급하여 수확한 밀을 전량 계약 재배함으로 꾸준히 앉은뱅이밀의 생산 기반을 유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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